사진의 역사, 사진의 발명부터 예술로서의 사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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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사진의 역사는 사진 발명의 과정이다.

인류는 눈에 보이는 상을 그대로 남기길 원했다. 이 욕구는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도 보이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발면한 옵스큐라이다. 당시엔 옵스큐라에 비치는 상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미 카메라의 핵심 원리를 1700년대에 알았는데 사진은 왜 1800년대나 되서야 발명되었을까? 1700년대 당시 인류는 빛을 이해하였지만, 이 빛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몰랐고 그 방법을 찾아내는데에 100년이 걸린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류 최초의 사진의 촬영 연도는 정확하지 않다. 최초의 사진 발명자인 니엡스가 찍은 <르 그라의="" 창문에서="" 바라="" 본="" 조망="">은 1826년경, 또 다른 사진발명자인 다게르가 찍은 <파리 탕플="" 대로의="" 광경="">은 1838년경으로 추정될 뿐이다. 당시 사진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진의 기록에 대한 관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사진을 찍으려 8시간 동안 셔터를 열어 놓았다고 한다.

사진이 발명된 후 기술의 영역에서만 있던 사진은 예술의 영역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진을 예술로 인정 받기 위한 초창기 사진가들의 노력이 이어지며 19세기는 예술사진 또는 픽토리얼 포토그래피, 즉 예술로서의 사진이 사진계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물론 사진이 예술로 인정 받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회화는 수백년에 걸쳐 발전되어 왔고, 수많은 이론이 정립되었던데 비해 사진은 그렇지가 않았다. 특히 회화는 잘 사는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보수적인 분위기였을 것이다. 특히 당시 예술은 칸트의 정의를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칸트는 예술을 '신이 잠시 동안 빌려 준 정신, 손의 기교' 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에 의존해 상을 맺는 사진은 더욱 예술로서 인정받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당시 사진이 예술로서 인정받기 위해 회화적 구성을 모방하는 노력들이 있었다. 이 노력은 회화의 4가지 요소를 모방했는데 그 세 가지는 '스토리텔링', '손의 노력, 시간, 개입', '구성, 구도의 깊이', '효과' 이다. 아래 사진은 오스카 구스타브 레일란더의 <인생의 두 길, 1857>으로 회화가 요구한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1. 선과 악, 근면과 방탕 이라는 주제.
  2. 30장의 사진을 합성하며 만든 사진이라는 것.
  3. 아카데믹한 배경, 원근법적 구성, 좌우대칭 구성 등
  4. 예술의 울림, 깊은 감정의 발산. 이러한 노력으로 <인생의 두="" 길=""> 은 예술사진으로 진정받고 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이 작품을 구매함으로 더욱 예술사진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물론 이런 픽토리얼 포토그래피는 사진분리파에 의해 사진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한 아래 사진 <임종, 1858> 역시 전형적인 회화적 구성을 따르는 사진이다.

이렇게 사진은 예술로 인정받으면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당시 사진기는 엄청나게 크고 불편했던 했기 때문에 사진기를 고정시키고 찍을 수 있는 초상 사진과 정물 사진 위주로 발전하게 된다. 사실 초상 사진은 현재까지 인류가 가장 많이 찍는 사진의 장르일 것이다. 현대는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기에 그렇지만, 19세기 당시엔 부자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부의 상징인 자신의 얼굴을 누구나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그토록 많이 찍게 되었던 것이다.

초상 사진과 더불어 19세기부터 현재까지 가장 많이 찍힌 사진은 정물 사진이다. 당시엔 크고 불편한 사진 촬영 환경 때문일 것이고 현대엔 누구나 갖고 있는 카메라와 예쁜 카페들이 많기 떄문에 그렇지 않을까. 초창기 사진 역시 회화에서의 정물을 모방하였다. 하지만 19세기엔 사람, 풍경 그리고 움직이는 것들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사진에서는 정물 그 자체의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삶 가까이, 삶과 연관된 사물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더 쉽고 사진의 체질에 맞았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지게 발전한다. 꽃, 병, 과일과 같이 회화가 오랫동안 취해온 오브제보단, 발코니에 놓인 우유병,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 같은 것들에 의미를 두면서 말이다.

이렇게 사진이 태어난 19세기는 사진이 예술로써 자신의 방향을 정립해가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대중들에게 다가간 시기이다. 이 시기의 사진을 주로 예술로서의 사진 혹은 픽토리얼 포토그래피라고 부른다. 예술을 따라가려는 사진의 의미일 것이다. 사진학자들에 의하면 19세기가 사진 역사상 가장 많은 회화적, 예술적 사진을 찍은 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20세기로 들어오면서는 사진 분리파가 힘을 얻기 시작하는데, 사진 분리파는 기존의 예술과는 다른 사진만의 독자적인 길을 가야한다는 그룹이다. 이들이 이끄는 사진예술을 사진으로서의 예술 혹은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라고 한다. 다음번엔 현대까지도 사진의 주류인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에 대해 보겠다.